우선 답변 감사합니다. 그런데 답변이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1. 윤 교수께서는 이렇게 쓰셨습니다.

"한겨레의 복잡한 내부사정"이라는 대목이 오해의 소지 또는 쓸데없는 상상을 부추길 소지가 있다는 말씀은 이해가 안됩니다. 문맥상 김대중-노무현 정부 또는 신자유주의-포퓰리즘에 대한 찬반이라는 뜻이 아주 분명하니까요.

하지만 저로선 이 납득이 안됩니다. 윤 교수께서는 한겨레의 복잡한 내부 사정을 두번 거론하셨습니다.

“국외자인 내가 자세히 알 수는 없겠지만, 창간 시절부터 복잡했던 <한겨레신문>의 내부사정이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더욱 악화되었던 것이 무시할 수만은 없는 요인이었다는 생각이다.” “1992년 동인지 <이론>의 창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초대 편집위원장을 맡으신 것도 <한겨레신문>의 복잡한 내부사정을 짐작하던 나로서는 아주 고마운 일이었다.”

창간 때부터 복잡했던 내부 사정이라고 하셨으니, 그것이 친-반 김대중이라는 뜻이라면 모를까 신자유주의-포퓰리즘에 대한 찬반이라는 뜻으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노무현은 더 말할 것도 없겠구요. 사실 1992년부터 윤 교수께서 짐작하신 한겨레의 복잡한 내부 사정이 뭔지는, 약간의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모두 아는 겁니다. 더 길어지면 초점이 흐려지니, 이 부분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2. 두번째로 정 교수의 중앙일보 칼럼 건입니다. 먼저 그 칼럼의 중요 내용 몇부분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지금 국회가 아주 시끄럽소. 그중에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시비도 한몫 거드는데 출자총액 제한제도 유지, 계좌 추적권 부활, 금융 계열사 의결권 축소가 그 골자입디다. (생략) 삼성전자와 포스코의 외국인 지분이 각각 54%와 70%이고, 국민은행과 외환은행 역시 77%와 72%에 이르고 있소. 미국인 조지와 영국인 토니가 이 기업의 회장과 사장이 되고, 독일인 한스가 이 은행의 행장으로 오는 것이 아닌 밤중의 잠꼬대가 아니오. (생략) 나의 초조는 외자에 의한 국내 기업 초토화에 있소이다. (생략) 재벌의 버릇은 고쳐야 하지만 한층 더 절박한 숙제가 우리 기업을 지키는 일이란 말이지요. 그런데도 K형은 여전히 재벌을 탓하고 나는 외자를 걱정하다면, 당신이 보수가 되고 내가 개혁이 되는 셈이오.”

윤 교수 말씀대로 하자면, 지금 싸움은 구악(국내 재벌)과 신악(해외 신자유주의자 앞잡이)간의 싸움이 되는 건가요? 그런데 공정거래법 논란의 핵심인 금융 계열사 의결권은, 이건희 일가가 적은 지분 가지고 삼성그룹 좌지우지하는 핵심 도구입니다. 출자총액 제한이 문제라는 주장이 헛소리라는 건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겁니다. 게다가 삼성의 외국인 지분 54% 때문에 국내 기업이 초토화하고 있다는 건 이만저만 과장이 아닙니다. 초토화하는 국내 기업은 삼성이나 포스코같은 거대기업이 아닙니다. 몇몇 재벌을 빼고 실제로 초토화하고 있는 나머지 힘없는 국내 기업은 공정거래법이 어찌 바뀌든 별 상관 없는 곳들입니다. 게다가 국민은행, 외환은행의 문제는 공정거래법 논란의 핵심과 무관합니다.

제가 과문한 탓인지, 정 교수께서 한겨레 계실 때도 '이런 류의 신자유주의-포퓰리즘 경제 정책'을 비판하셨다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그리고 윤 교수께서 이것이 생각의 차이라고 하시면 저는 할 말이 없지만, 김수행 교수는 여전히 할 말이 있으실 겁니다.

3. 윤 교수께서 요약하신 김수행 교수의 지적은 실제 글의 핵심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김 교수가 정 교수를 비판한 대목은 다음 두 문단입니다.

“당신은 중앙일보로 간 뒤부터 점점 한국사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오. 나는 당신이 중앙일보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 문제를 다른 각도에서 보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멀어졌으며 나도 놀랐지만 금년도 나의 연락망에 당신의 전화번호는 사라져 버린 것이오. 이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중국을 다니고 세계를 누비더라도 우리의 민중을 잊어버리면 마르크스주의자로서는 자격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지요. 당신은 이런 것을 개의하지 않고 “나는 옳다”고 외치지만 민중은 당신이 삼성재벌에 포섭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김 교수와 정 교수의 개인적 관계나, 김 교수가 마르크스주의자냐 아니냐는 제 관심 밖입니다. 제 관심은 객관적으로 행해진 김 교수의 비판이고, 김 교수를 비판하려면 이 부분을 비판해야 합니다. 나머지 사적인 문제는 그야말로 사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정도로 마칩니다. 저는 윤 교수와 논란을 벌일 생각도, 능력도 없습니다. 윤 교수의 시각이 뭔지 알게 된 것으로 족합니다.

마지막으로 제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건, 나름대로 고려가 있습니다. 굳이 아실려면 알아내는 게 어렵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냥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추가: 마지막 부분은 쓰고 보니 헛소리가 됐군요.^^